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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의 상인 표지

베니스의 상인

윌리엄 셰익스피어

선과 악의 경계가 없는 인물들, 법과 자비 사이의 갈등. 1596년에 쓰인 희곡이지만 오늘날의 질문을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

  • 단순한 권선징악이 아닌, 복잡한 도덕적 질문을 던지는 이야기를 찾는 분
  • 셰익스피어를 처음 읽어보려는 분 (비극보다 접근하기 쉬운 편입니다)
  • 법과 정의, 자비의 차이를 생각해본 적 있는 분
  • 돈이 인간관계를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관심 있는 분
  • 고전이라는 이유로 멀리했지만 한 번쯤 도전해보고 싶은 분

핵심 내용 정리

줄거리 한눈에 보기

베니스의 상인 안토니오는 친구 바사니오를 위해 돈이 필요하자,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에게 대출을 요청합니다. 계약 조건은 기이했습니다. 기한 내 상환하지 못하면 안토니오의 살 1파운드를 가져가겠다는 것. 안토니오는 배가 돌아오면 충분히 갚을 수 있다고 자신했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습니다.

그러나 안토니오의 배는 난파되고, 샤일록의 딸 제시카는 기독교인과 사랑에 빠져 아버지의 재산을 훔쳐 도망칩니다. 분노와 상처가 겹친 샤일록은 계약 이행을 끝까지 고집합니다. 법정에서 살 1파운드를 요구하는 샤일록, 그리고 남자 변호사로 변장해 나타난 포샤의 반전이 극의 클라이맥스를 이룹니다.

샤일록: 악당인가, 희생자인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되는 인물은 단연 샤일록입니다. 처음에는 탐욕스러운 악당처럼 보이지만, 그를 둘러싼 맥락을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베니스 사회에서 끊임없이 차별받고 멸시당하던 인물. 딸마저 기독교인에게 빼앗기고 재산까지 도둑맞은 아버지. 그의 복수심이 완전히 부당하다고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샤일록이 법정에서 외치는 대사가 있습니다. "유대인에게 눈이 없습니까? 손이, 장기가, 감각이, 애정이, 열정이 없습니까? 우리도 기독교인과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무기로 다치고, 같은 병에 걸리고, 같은 방법으로 치료받습니다." 이 대사를 읽는 순간, 그를 단순한 악당으로 읽는 게 불가능해집니다. 셰익스피어는 이 인물을 통해 관객에게 불편한 거울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물론 샤일록은 잔혹합니다. 죽음을 선고받을 위기의 안토니오 앞에서도 단 한 번도 자비를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잔혹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함께 보면, 이 작품이 훨씬 복잡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차별과 혐오가 사람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포샤의 재판: 자비인가, 교활함인가

법정 장면은 이 희곡의 백미입니다. 변호사로 변장한 포샤는 처음에 샤일록에게 자비를 구합니다. "자비는 강요할 수 없는 것,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처럼 부드럽게 내립니다." 샤일록이 이를 거부하자 포샤는 계약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살 1파운드를 가져가되, 피는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고. 베니스의 법은 외국인이 시민을 해치려 할 경우 전 재산을 몰수할 수 있다는 조항도 들이밉니다.

이 반전은 통쾌합니다. 동시에 찜찜합니다. 자비를 거부한 샤일록이 법의 허점으로 무너지는 결말을 보며 순수하게 통쾌해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포샤의 논리는 탁월하지만, 그 논리가 적용되는 방식은 정의보다는 교묘함에 가깝게 느껴지거든요. 샤일록이 개종을 강요받고 전 재산을 잃는 결말을 보며, 승리한 쪽이 마냥 정의롭다고 보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돈과 사랑, 그리고 계약

이 희곡에는 두 개의 평행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나는 안토니오와 샤일록의 계약, 다른 하나는 바사니오와 포샤의 사랑. 흥미롭게도 두 이야기 모두 돈과 계약으로 얽혀 있습니다. 바사니오가 포샤에게 구혼하러 가는 데도 돈이 필요했고, 그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안토니오가 목숨을 담보로 내놓습니다.

포샤의 아버지가 남긴 금, 은, 납 세 개의 상자 시험도 흥미롭습니다. 겉이 화려한 금과 은이 아니라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자"를 위한 납 상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돈과 외모보다 내면을 봐야 한다는 메시지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포샤 자신은 막대한 재산을 가진 상속녀입니다. 이 작품은 사랑과 돈의 분리를 이야기하면서도, 그 두 가지를 끊임없이 뒤섞어놓습니다.

인상 깊은 부분

"자비는 강요할 수 없는 것. 그것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처럼 부드럽게 내립니다. 자비는 베푸는 사람과 받는 사람 모두를 축복합니다."

포샤가 법정에서 샤일록에게 자비를 구하는 장면입니다. 셰익스피어의 문장 중 가장 많이 인용되는 대사 중 하나인데, 막상 이 대사를 외친 포샤가 이후 샤일록에게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묘한 역설을 느끼게 됩니다. 자비를 설파하는 사람이 정작 자비를 베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이 남습니다.

"유대인에게 눈이 없습니까? 우리가 찌르면 피가 나지 않습니까? 우리가 간지러우면 웃지 않습니까? 우리가 독을 먹으면 죽지 않습니까?"

샤일록의 이 대사는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집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주장하는 절절한 외침이면서, 동시에 그 외침이 복수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논리로 사용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어느 쪽 편도 들지 않으면서 독자에게 판단을 떠넘기는 방식이 이 작품을 수백 년간 살아있게 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읽고 나서

베니스의 상인을 다 읽고 나서 드는 첫 번째 감상은 "이 작품을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였습니다. 셰익스피어가 이것을 희극으로 썼다는 사실이 읽고 나면 어딘가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바사니오와 포샤의 결혼으로 끝나는 해피엔딩이지만, 샤일록의 몰락과 강제 개종은 어떻게 봐도 유쾌한 결말이 아니거든요.

현대의 독자가 이 작품을 읽을 때 느끼는 불편함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시대의 영국 관객에게는 유대인 악당의 패배가 통쾌한 결말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구조 자체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 불편함이 오히려 이 작품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어떤 인물이 악당이고 어떤 인물이 피해자인지에 대한 판단도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그 유동성이 셰익스피어를 고전으로 만든다는 것.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읽은 후 샤일록에 대한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그는 비극의 주인공이 아닌 희극의 악당으로 쓰였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비극적 깊이가 있습니다. "내 딸, 내 돈"을 동시에 잃고 통곡하는 장면에서 그의 인간적 면모가 가장 생생하게 드러납니다. 딸을 돈처럼 대한 것인지, 아니면 딸을 잃은 고통이 너무 커서 재산 이야기로 표현한 것인지, 그 모호함이 이 인물을 단순하게 읽는 것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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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A. 네, 현대 한국어 번역본은 읽기 편하게 나와 있습니다. 희곡 특성상 무대 지문이 있고 대사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이야기 자체가 워낙 탄탄해서 소설처럼 읽히는 편입니다. 처음 셰익스피어를 접하는 분이라면 비극(햄릿, 맥베스)보다 이 작품이 더 접근하기 쉬울 수 있어요. 국내에는 민음사, 열린책들 등 여러 출판사의 번역본이 있으니 서점에서 번역 문체를 비교해보고 고르는 것을 추천합니다. **Q. 반유대주의 작품이라는 평이 있던데, 어떻게 봐야 하나요?** A. 이 작품에 유대인을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요소가 있다는 건 사실입니다. 엘리자베스 시대 영국의 편견이 작품에 반영되어 있어요. 하지만 동시에 샤일록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주장하는 대사들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진보적인 시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반유대주의 희곡이기도 하고, 그 반대를 비판하는 텍스트로 읽힐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 독해가 맞냐가 아니라 그 긴장감 자체를 작품의 일부로 보는 게 더 풍부한 읽기가 될 것 같습니다. **Q. 비슷한 주제의 다른 작품을 추천해주신다면?** A. 법과 정의의 경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카프카의 《소송》과 비교해 읽으면 흥미롭습니다. 계약과 복수의 모티프를 좋아한다면 셰익스피어의 다른 작품인 《오셀로》도 추천합니다. 좀 더 현대적인 텍스트를 원한다면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함께 읽으면, 포샤의 법정 장면을 다른 각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