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모노》는 성해나가 2025년 창비에서 펴낸 두 번째 소설집으로, 출간 1년 만에 40만 부를 넘기며 하나의 독서 현상이 된 화제작이다. 표제작 「혼모노」는 30년 차 박수무당이 자신이 모시던 신령을 젊은 무당에게 빼앗기는 이야기로,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누가 정하는가'라는 이 소설집 전체의 질문을 압축한다. 이 글은 '혼모노'라는 제목의 뜻부터 표제작의 줄거리, 수록 단편 일곱 편의 구성, 이 책이 왜 세대를 가로질러 읽혔는지, 그리고 읽을 가치가 있는지까지 순서대로 정리한다.
- 저자
- 성해나
- 출판
- 창비
- 출간
- 2025
- 분량
- 368쪽
- 난이도
- 보통
- 완독 시간
- 6~8시간
- 별점
- ★★★★★
30년을 진짜라 믿어 온 무당에게서 신이 떠나고 스무 살 애송이에게 옮겨가는 순간, '진짜'란 실력이 아니라 남들이 믿어 주느냐의 문제였음이 드러난다.
줄거리 요약
표제작 「혼모노」의 화자는 서른 해를 무당으로 살아온 박수 문수다. 그는 신령 장수할멈을 몸주로 모시며 굿판에서 잔뼈가 굵은, 자타공인 '진짜' 무당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신이 예전처럼 내리지 않는다. 몸이 예전 같지 않고, 신도들 앞에서 확신이 흔들린다. 그 즈음 앞집으로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무당 신애기가 이사를 온다. 신애기는 태연히 말한다. 장수할멈이 "넌 너무 늙었다"며 자신에게로 왔노라고.
여기서 문수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그가 평생 진짜라 믿어 온 신앙의 근거 — 나에게 신이 있고, 그래서 내가 진짜다 — 가 통째로 흔들린다.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신애기가 자신보다 더 '진짜 같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젊고, 거침없고, 신도들이 그쪽으로 몰린다. 문수는 자신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스스로 증명할 방법이 없다. 신이 내렸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이 그렇게 믿어 줄 때만 성립하기 때문이다. 소설은 문수가 이 인정투쟁의 벼랑 끝에서 어떤 선택을 향해 가는지를 팽팽하게 따라간다. (표제작의 결말은 문수가 '진짜'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해 무엇까지 감수하는가에 달려 있으니, 직접 확인하는 편이 좋다.)
《혼모노》는 이 표제작을 포함해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을 묶었다. 아이돌 덕질의 은밀한 죄책감을 파고든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이 계절의 소설과 올해의 문제소설에 뽑힌 「스무드」, 남영동 대공분실이라는 국가폭력의 공간을 건드리는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지역재생 스타트업 직원들과 귀촌한 이들이 서로의 민낯을 확인하는 세태소설 「우호적 감정」, 그리고 「잉태기」와, 고교 시절 메탈 밴드를 함께했던 세 친구의 현재를 애틋하게 그린 「메탈」이다. 소재는 무속·덕질·건축·스타트업·농촌재생사업으로 제각각이지만, 일곱 편은 하나의 질문으로 묶인다. 우리가 '진짜'라고 부르는 것은 정말 진짜인가, 아니면 다수가 믿기로 합의한 무엇인가.
핵심 내용 정리
'혼모노(本物)'라는 제목의 뜻
'혼모노'는 일본어 本物(ほんもの), 곧 '진짜·진품'을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 단어는 한국 인터넷에서 뜻이 뒤집혀 통용됐다. 도를 넘은 극성팬이나 상식 밖의 진상을 비꼬아 "저 사람 혼모노다"라고 부르는, 조롱의 신조어가 된 것이다. 본디 '진짜'라는 긍정의 말이 '진짜 이상한 사람'이라는 야유로 변질된 셈이다. 성해나는 바로 이 전락에 주목한다. 거짓이라도 다수가 믿으면 진실이 되어 버리는 시대, 진짜라는 말 자체가 얼마나 쉽게 조작되고 오염되는지를 제목 하나에 담았다.
진짜와 가짜를 가르는 것은 실력도 진심도 아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것을 진짜라고 믿어 주느냐, 오직 그 숫자다.
진짜와 가짜, 그 경계에 선 사람들
일곱 편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가 딛고 선 '진짜'가 흔들리는 자리에 놓인다. 신을 빼앗긴 무당, 좋아하는 마음을 떳떳이 말하지 못하는 팬, 이상을 내걸었지만 밥벌이 앞에서 위선을 들키는 스타트업 종사자, 한때 진심이었던 음악을 놓아 버린 중년의 친구들. 성해나는 이들을 심판하지 않는다. 대신 진짜와 가짜가 실은 얼마나 붙어 있는 개념인지, 가짜라고 손가락질받는 자리에도 얼마나 절박한 진심이 있는지를 끈질기게 들여다본다.
세대를 가로지른 공감과 흡인력
《혼모노》가 40만 부 넘게 팔리며 화제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문장이 관념으로 도망가지 않고 인물의 몸과 생활에 착 붙어 있어서, 소설을 잘 읽지 않던 독자까지 "읽는 재미"로 끌어들였다. 온라인 서점과 SNS의 입소문을 타고 알라딘과 여러 일간지의 '올해의 책' 투표에서 1위에 올랐고, 표제작 「혼모노」는 2024년 젊은작가상과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을,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는 2025년 젊은작가상을 받으며 2년 연속 젊은작가상이라는 이력을 만들었다.
가짜라고 불리는 자리에도 저마다의 절박한 진심이 있다. 문제는 그 진심을 알아봐 줄 사람이 남아 있느냐는 것이다.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좋았던 점
- 하나의 질문을 일곱 각도로 변주한 설계. 무속·덕질·국가폭력·스타트업·밴드로 소재는 흩어져 있지만, '진짜란 무엇인가'라는 축이 소설집을 한 권의 장편처럼 단단하게 묶는다. 어느 단편을 먼저 펴도 주제가 이어진다.
- 관념이 아니라 몸으로 쓴 문장. 굿판의 감각, 덕질의 은밀한 죄책감, 밴드 합주실의 공기까지 구체적인 디테일로 살아 있어, 인물의 처지가 머리가 아니라 피부로 전해진다.
- 판단을 유보하는 시선. 진짜와 가짜, 위선과 진심을 선악으로 가르지 않는다. 조롱받는 인물의 안쪽까지 들어가 그 사람의 사정을 보게 만드는 윤리적 태도가 이 책의 품격을 만든다.
- 지금 여기의 언어. 인터넷 신조어를 표제로 끌어와 동시대의 감각을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가볍지 않다. 유행어가 문학의 주제로 승격되는 드문 사례다.
아쉬운 점
- 소재의 화제성이 편차를 만든다. 표제작과 「길티 클럽」의 밀도가 워낙 높아, 상대적으로 조용한 단편들은 인상이 옅게 남을 수 있다. 소설집 특유의 기복이다.
- 주제의 반복이 후반부의 긴장을 다소 눅인다. '진짜/가짜'라는 축이 강하다 보니, 여러 편을 연이어 읽으면 다음 단편의 결이 어느 정도 예상되는 지점이 있다.
- 결말의 여운을 '열림'으로 처리하는 방식이 잦다. 명료한 매듭보다 질문을 남기는 마무리가 많아, 딱 떨어지는 결말을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아쉬울 수 있다.
이 책이 필요한 사람
- SNS와 팬덤, 커뮤니티의 언어 속에서 살아가며 '진짜와 가짜'의 감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곱씹어 보고 싶은 사람.
- 소설을 오래 놓았다가 다시 "읽는 재미"로 돌아오고 싶은 사람 — 이 책은 진입장벽이 낮고 흡인력이 세다.
- 한 편이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같은 주제를 깊이 파고드는 소설집의 밀도를 좋아하는 사람.
- 반대로, 소재의 화제성보다 한 편의 완결된 장편이 주는 몰입을 원하는 독자라면 단편집 특유의 호흡이 다소 헐겁게 느껴질 수 있다.
인상 깊은 부분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문수가 신애기 앞에서 자신이 여전히 진짜임을 증명하려 애쓰는 대목이다. 30년 경력도, 쌓아 온 신도도 그 순간에는 아무 담보가 되지 못한다. 신이 내렸다는 사실은 오직 남들이 그렇게 믿어 줄 때만 유효한데, 그 믿음이 젊은 쪽으로 옮겨가 버렸기 때문이다. 이 무력함이 아프게 다가오는 이유는, 그것이 무당만의 이야기가 아니어서다. 연차가 곧 실력이라 믿어 온 직장인, 오래된 팬임을 자부하던 사람, 한 분야에서 '진짜'로 불리던 누구에게나 어느 날 '너는 너무 늙었다'는 말은 찾아온다. 성해나는 무속이라는 낯선 세계를 빌려, 인정이 곧 존재의 근거가 되어 버린 우리 모두의 불안을 정확히 건드린다.
읽고 나서
이 책을 덮고 나면 '진짜'라는 말이 예전처럼 단단하게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진짜라고 부르는 것들 — 진정성, 원조, 전문가, 진심 — 이 실은 다수의 승인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당장 해볼 만한 것은, 내가 최근 누군가를 '가짜'라고 판단했던 순간을 떠올려 그 판단의 근거가 정말 그 사람의 실체였는지, 아니면 남들이 그렇게 부르기에 나도 따라 믿은 것이었는지 되짚어 보는 일이다. 그 질문만 남겨도 이 소설집은 제 몫을 다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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